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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1) -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마태복음 5장 1~12절) 구재원 2014-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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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 (1) -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마태복음 5장 1~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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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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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한 가난한 남자와 스님이 임금님을 찾아와 판결을 요청합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가난한 남자의 부친이 임종을 맞으면서 자녀들을 걱정하여 자녀들에게 복을 주십사 하고 자신의 모든 소유를 절에 시주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부친이 죽은 뒤 자녀들이 별로 부유해지지 못해서 가세가 기울고 나중에는 아주 굶어죽을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들인 가난한 남자가 절에 가서 따졌습니다. 복을 받지 못했으니 전답과 소유를 내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최소한 반이라도 내놓으라. 우리가 다 굶어 죽게 생겼다.”

 

스님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서 거절합니다. 하나는 부처님께 시주한 것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부처님이 이미 복을 주었는데 그것을 당신이 모르고 있기 때문에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둘 다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성종이 참 지헤로운 판결을 내립니다. “이 사람 부친이 재산을 시주한 이유는 자손들에게 복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절 부처는 복을 주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절은 재산을 이 사람에게 돌려 주고, 그 대신 이 사람에게 내린 복은 그 절 부처가 도로 거두어 가도록 하라.” 매우 지혜로운 판결입니다.

 

인도의 지도자 간디가 영국을 방문하고 인도로 돌아왔을 때의 일입니다. 국민들은 영국을 다녀 온 간디가 국가에 이익이 되는 선물을 가지고 왔으리라 생각하고, 그의 입에 주목하였습니다. 간디가 인도 국민들에게 들려 준 이야기는 바로 오늘 본문인 “산상수훈” 이었습니다. 간디는 산상수훈을 읽어 주면서 인도 백성이 식민지배와 가난, 외침에서 살 수 있는 길이 산상수훈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종교가 힌두교도였던 간디는 늘 산상수훈이 담긴 마태복음 성경을 가지고 다니면서, 2000명이 넘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만큼 산상수훈에는 놀라운 진리와 하늘의 비밀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디의 비폭력 혁명으로의 인도의 독립이라는 사상 또한 그 시작점이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오늘과 한 주간의 특별 새벽 기도회, 그리고 다음 주일까지 하늘의 복을 누리는 8가지 통로, 팔복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팔복의 말씀은 세상에서 통용되는 값싼 물질의 축복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간디처럼 산상수훈의 말씀을 깨닫게 되면,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삶의 진정한 의미와 깊은 통찰력을 얻게 될 것이고, 이것이 팔복에서 예수님께서 내내 강조하시는 하늘의 축복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저 또한 팔복의 말씀을 연구하며 설교를 준비하면서 성령님께서 주시는 깊은 통찰력과 하늘의 지혜를 얻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이 이러한 은혜를 입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본문의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호수를 애워싸고 있는 햇틴산의 서북편 가버나움 근처의 산에 오르십니다. 지금은 이 산을 예수님께서 팔복을 전하셨다 하여 ‘팔복산’ 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팔복산에 올라 앉으셨고,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옵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사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으로 그렇게 많은 가르침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복음서에 예수님의 말씀이 가득한데 그게 무슨 말이냐 하실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복음서를 제자들이 기술할 때에 예수님 생전에 가르침을 주실 때마다 적어 놓은 예수님의 어록 자료를 가지고 복음서를 써내려 갔기에 많은 부분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의 양으로 보기에는 사실 많이 적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말을 많이 합니까? 3년 동안 가르쳤다면 얼마나 많은 양의 어록이 나왔을까요?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보다는 거룩하고 모범된 생활로 무언의 교훈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2절의 헬라어 원어의 뜻도, ‘엄숙하고 권위있는 가르침’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보화와 같은 하늘의 비밀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입을 열어 말씀으로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드디어 팔복의 첫 번째 말씀입니다.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여기에서 ‘심령’ 이란 무엇일까요? 심령은 보통 ‘영’ 으로 번역되는 말로서 근본적인 마음, 가장 기초적인 자아를 뜻합니다. 근본적인 마음이란 물질적인 부분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자아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영적인 부분, 심적인 부분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하다’ 라는 헬라어 원어는 ‘프토코스’ 입니다. 이것은 절대적 극빈자를 뜻하는 단어인데, ‘완전히 비어 있어서 간절히 간구하다’ 라는 뜻을 갖습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자 란 영적으로, 심적으로 완전히 비어 있고, 자신의 비어 있음을 알기에 겸손하게, 간절히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간구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렇다면, 반대로, 심령이 부유한 것은 무엇일까요? 심적으로, 영적으로 부유하고, 가득 차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마음이 부유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이 교만해져야 합니다. 안아무인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이들의 사정은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욕심만을 위해 내달리고 그것을 얻어낼 때 마음이 교만해지고, 부유해 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사람도 분명히 내적인 갈등과 물질과 세상 가치로는 채우지 못하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다에서 바닷물을 퍼먹듯이, 사막에서 모래를 퍼먹듯이, 세상적 가치와 재물로 비어 있는 마음과 영혼을 채우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 목이 마르고, 더 답답해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내려 놓지 못하고 계속 악순환의 고리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심령의 가난함입니다. 자신의 영혼이, 마음이 완전히 방전된 상태임을, 비어 있는 상태임을 인정하고, 세상 것으로 그것을 채우려고 애 쓰지 말고,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 가려 하지 말고, 창조자 되시고, 절대자 되신 하나님께 나 자신을 내어 맡기고,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면서,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가장 안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것 아닙니까? 나를 내려 놓지 못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도, 의지하지도 못하면서, 결국엔 인생에 다가오는 문제를 풀 수 없는 연약하고 무기력한 나를 발견하는 것, 그러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듯 버티지만, 결국엔 퍼먹은 모래로 숨도 쉴 수 없는 삶이 되는 것,

 

이 모습이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내려 놓지 못하는 안타까운 인생의 모습, 심령이 가난하지 못한 모습 아닌지요? 내가 주인 삼았던 것들을 내려 놓을 때, 나를 내려 놓고, 완전히 비어 있는 심령을 하나님 아버지 앞에 맡길 때, 비로소 천국이 우리 것이 되는 것입니다.

 

화니 크로스비 라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크로스비는 어린 시절 집에서 일하시는 가사 도우미의 부주의로 시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어두움과 절망 속에서 살아갈 어린 손녀에게 할머니는 성경을 읽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크로스비는 육신의 눈을 감겨 있었지만, 영안이 열리게 되고, 지혜가 밝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찬송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나의 갈길 다가도록’ ,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가 모두 크로스비의 작품입니다. 무려 9000편이나 되는 찬송시를 만드는 유명한 작사가가 되었습니다.

 

화니 크로스비는 항상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만약 나에게 하나님께서 시력을 허락해 주신다 해도 나는 받지 않으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밝은 눈을 주실 터인데, 세상에서 더렵혀지지 않은 깨끗한 눈으로 우리 주님의 얼굴을 보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화니 크로스비는 육신의 눈이 아닌 영적인 눈으로 창조주 되시고,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한 그녀의 삶은 천국을 소유한 하나님 자녀의 삶을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저와 여러분이 아버지 되신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내 상처 받고, 비어 있고,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속 사람을 내어 드리고, 주님께서 채워 달라고, 주님께서 인도해 달라고 간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의 주인입니다.

 

함께 찬양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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