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정체가 무엇이냐?" 이는 고 옥한흠 목사님이 사랑의교회 후임 목사에게 던진 물음입니다. 아울러 그분은 목회의 본질을 유기하는 권력 밀착, 특정 정권 지지, 비전 남발, 무분별한 사역 확장, 초대형 건축, 허세 과시, 부적절한 설교, 그리고 소통 부재 등의 소행에 대해 큰 우려를 표명하셨습니다.
사실 옥 목사님뿐만 아니라 많은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한국교회의 아픈 현실을 크게 염려하며 오늘도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포로된 땅 바벨론의 강가에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울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마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거룩해야 할 주님의 교회가 파괴되어 강도의 소굴로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갈수록 순수한 목자들은 구석으로 밀려나고 영악한 종교 상인들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정치 권력에 아부하는 목사들의 막말은 그칠 줄을 모르고, 공금 횡령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목사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면죄부라도 한 장 얻은 것처럼 더욱 기고만장입니다.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을 받았으나 당회장실에서 여신도와 구강 성교를 한 목사도 아주 의연하게 목회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면 목사 자격증인지 업자 면허인지 하여튼 그걸 즉시 몰수해야 정상이건만 모두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개똥도 막상 찾으면 없다더니, 해당 교단에는 고고하고 의롭고 잘난 척하던 유명 목사님들이 상당히 많은데 다들 어디서 뭘 하시는지 몰라도 아주 쥐 죽은 듯 조용하기만 합니다. 이는 많은 교단의 상층부에 얼마나 사악한 독사들이 무더기로 꽈리를 틀고 있는지 잘 설명해 줍니다. 이러니 비판자들이 한국교회를 향해 '사교 집단'이란 독설을 날리는 것이고, 사실 이에 마땅한 변명도 매우 궁색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비리가 가득한 교회 장부를 꽁꽁 숨겨두고 마음 졸이며 어서 기한이 만료되어 폐기할 날이 오기만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꿩머리에 새가슴 목사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아니 교회가 목사의 개인 소유입니까. 자기가 뭔데 공교회의 재정 장부를 은밀히 움켜쥐고 관리를 합니까. 굳이 번잡한 잡론을 더 장황하게 나열하지 않아도 '교회 세습' 이것 하나만 보아도 한국교회가 현재 얼마나 막장인지 잘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일찌기 기독교 역사상 이처럼 철면피한 세습을 무더기로 자행하고 있는 교회는 한국교회가 유일합니다.
목자가 변절하면 업자
그런데 이런 일부 목회자들의 파렴치한 범죄보다 더욱 심각한 일은 거룩한 교회 내에서 그 무슨 부정한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제대로 치리하고 권징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교회가 워낙 많다보니 모두 다 순수하고 평안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이젠 그 정도가 너무 심하여 한국교회는 이미 '회복 불능'이라는 말이 안밖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회 부패에 대해 늘 '극히 일부'라고 강조하던 분들이 제법 많았지만, 이젠 그 말을 순진하게 믿어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으리라는 것은 아마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퇴폐적 자본주의 경제 논리를 거룩한 교회가 무분별하게 수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 잘하고, 교인수 늘리고, 교회당 확장하고, 그리고 큰 사업 잘 하는 목사라면 그 근본과 정체성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더라도 그냥 넘어가자고 합니다. 교회 공금을 떼어 먹든, 간통을 하든, 세습을 하든, 그리고 그 무슨 옆차기를 하든 그게 뭐 그리 큰 문제냐는 것입니다. 도리어 이 도적들은 "당신들은 죄 없고 허물 없느냐"며 적반하장으로 뒤집어 쒸우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요즘 한국교회는 목사가 나서서 안 되는 것도 거의 없고, 반대로 제대로 되는 것도 별로 없는 변태적인 교회가 된 것입니다. 방방곡곡에 대형 건물 잔뜩 세워 놓고, 아파트 단지 상가마다 교회들이 난립하고, 지방 농어촌은 물론 외진 섬마을에까지 빠짐없이 예배당이 들어섰지만 오히려 국민들의 따거운 지탄과 비난이 날로 증폭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같은 예수님을 따르는 가톨릭 사제들은 사회적 존중을 받고 있건만 유독 개신교 목사들만은 '목레기(목사+쓰레기)'라는 처참한 말까지 듣고 있는지요.
이는 많은 목사들이 목자의 마음을 배신하고 업자로 변절하였기 때문이 아닙니까. 양식있는 분들은 한국교회를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어찌 교회의 성직자란 사람들이 저런 더러운 짓을 할 수 있느냐고 탄식합니다. 당연한 지적입니다. 그러나 '업자의 논리'로 보자면 그런 비리 사역자들을 이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목자가 아니라 직업적 업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을 적발하기가 그리 간단하지 않은 이유는 본래 종교 사기꾼들이 평소엔 진짜 목자보다 더 경건한 척 위장을 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매우 유감스럽지만 이젠 목사를 두 부류로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는 안타까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진실한 제자들인 '목자'이고, 다른 하나는 사탄의 속가 제자들인 '업자'입니다. 물론 목자는 양을 사랑하고, 업자는 돈을 사랑합니다. 목자는 영혼을 위해 사역하고, 업자는 권력을 위해 사역합니다. 목자는 교인 아래에서 섬기고, 업자는 교인 위에 군림합니다. 목자는 자신의 것을 교회에 바치며 사역하나, 반면에 업자는 교회의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사유화합니다. 심지어 신도들까지 사병화하여 맹신도로 만들고 두고두고 단물을 빨아 먹습니다. 그리고는 틈만 나면 그 무슨 허접한 핑계를 대서라도 교회의 돈을 꾸준히 챙겨갑니다.
동역자는 없고 동업자들만 북적
그런데 사실 일부 목회자들만이 업자가 아닙니다. 다른 제직들과 교인들 역시 이 업자의 대열에 합류한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정치적 인맥을 넓히기 위해 대형 교회에 출석하고 정치 목사들과 야합하는 사람들, 사업 고객을 늘리기 위해 지역 교회에 가서 담임목사에게 충성하는 사람들, 또는 사회적 신분 상승이나 혼인을 위해 교회 활동에 열심인 사람들도 제법 많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소위 복을 받기 위해 목사를 무당처럼 모시고 맹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목사가 교주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눈에 잘 안 보이니 그저 두꺼운 성경책 속에 곱게 모셔 두고, 오로지 눈 앞에 있는 목사님을 성스러운 제사장으로 대접하며 따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에서 직접 듣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목사님의 설교를 하나님 말씀으로 여기며 그대로 따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예수님의 제자는 줄어가고 목사의 제자들인 병신도들이 급증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귀족 목사들이 이런 상황을 방조하며 가장 즐기고 있습니다. 이처럼 지도급 목사들의 수준이 저 모양이니 여신도들을 향해 '목사 앞에서 속옷을 벗으면 내 신도!'라는 미친 소리까지 나오는 것입니다. 과연 이게 거룩한 공교회에서 나올 말입니까.
그 결과 과거 "평신도를 동역자로 세운다"고 자랑하던 많은 교회들마저 순식간에 '동업자들이 사역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횡령해도 서로 묵인하고, 성추행해도 침묵하고, 거짓말해도 아멘하고, 그리고 금이빨이나 입신 등 요란한 사이비 은사엔 아예 두 손 들고 할렐루야합니다. 도대체 십자가를 높히 세워 놓은 것 외에는 달리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보기 힘든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열심히 모이고, 열심히 바치고, 열심히 기도하고, 그리고 열심히 봉사를 하고는 있지만 대부분은 하나님의 공의를 상실한 채 자기 욕심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심할 경우는 담임목사도 업자, 부목사도 업자, 시무 장로도 업자,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제직들 또한 업자입니다. 특히 부목사를 단기 계약직으로 격하하여 파리 목숨으로 만들고 감히 대등한 동역은 꿈도 꿀 수 없게 계급화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담임목사는 영구직이고 부목사는 임시 계약직이어야 하는지요. 하여튼 어떤 교회는 가르치는 자도 업자이고 배우는 자도 업자인 그저 동업자들만 넘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교회들은 입구에 다양한 봉투를 잔뜩 나열하고 온통 돈 타령과 복 타령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결국 목회는 간 곳 없고 목축만 남은 것이지요.
간혹 어떤 분들은 비판만 자꾸 하지 말고 대안을 말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필자는 역으로 묻고 싶습니다. 정말 대안을 모르시는지요? 신도들이 각성하여 깨어 있으면 진정 교회가 이처럼 허망하게 무너질 리가 있을까요. 그런데 신도들을 바르게 가르치고 인도해야 할 목사들이 도리어 그들을 오도하고 맹신화하고 있으니 어쩌겠습니까. 제일 시급한 대안은 교회가 그런 목사들을 치리할 자정 능력을 회복해야 하는 것인데, 많은 경우 도리어 부패한 목사들이 종교 마피아를 형성하고 교권을 쥐고 있습니다.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지요. 그래서 교회법도 별 효능이 없고 사회법도 너무 멀기만 한 것입니다. 아예 그 어떤 대안의 적용마저 불가능한 절망적 상황이라는 것이지요.
교회 장부는 평신도 혁명의 발화점
사실 이런 심각한 현실을 아무리 아프게 지적하고 교회의 회복을 호소해도 정작 들어야 할 자들은 결코 회개하지 않으며 듣지 않는 것을 필자도 잘 압니다. 배도한 목사들은 바리새인들처럼 결코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성도들이 자꾸 진실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가능한 많은 교인들이 교회의 실상을 바르게 알고 저런 불의한 무리들의 사역에 동참하거나 이용당해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엔 간판만 정통이고 실제 사역은 사이비인 교회들이 너무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교회들의 일반적 공통점은 한결같이 교회 재정 장부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으며 자세한 사용 내역을 담임목사나 재정 장로 등 극소수가 독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법정 소송까지 불사하며 악취나는 장부를 숨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거룩하고, 학력 높고, 경건한 척하는 목사라도 교회 장부 공개를 거부하는 자들은 절대로 믿지 마십시요. 그들 중 상당수는 종교인을 빙자한 "독사의 새끼"들일 뿐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그들을 응징할 대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들이 각성하여 합심한다면 이런 종교 상인들에게 본 때를 제대로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교회 재정을 천원 단위까지 철저히 공개하고 바르게 사용할 때까지 헌금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다만 혹시 이 교권주의자들이 또 무슨 생트집을 잡을지 모르니 단돈 천원만 하면 좋을 것입니다. 한시적이나마 주일 헌금 천원에 십일조 천원이면 아주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구약 신정 국가의 독특한 세금으로 신약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들과 교부들조차 하지 않은 십일조를 오늘날 현대 교회의 교인들에게 의무적으로 강요하는 전횡은 얼마나 무지하고 부당한 작태입니까.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은 정말 아름답고 고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 돈을 가지고 장난질하는 사이비 유사 교회에는 결코 헌금해선 안 될 것입니다. 차라리 그 돈으로 가난한 친인척을 돕고, 직장 동료를 돕고, 이웃을 돕고, 독거 노인이나 소년 가장을 돕고, 미자립 교회나 선교사를 직접 돕기 바랍니다. 그러면 분명히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이웃이 서서히 변할 것입니다. 정작 시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이런 가난한 사람들은 외면하면서, 장부조차 공개 안하며 목회자들이 사치하고 방종하는 막장 교회에 헌금한다면 이는 매우 어리석은 행위가 될 것입니다.
지금은 지도자와 백성이 모두 극심하게 타락했던 예레미야 시대보다도 더욱 어두운 시기입니다. 그런데 그 선지자가 평생을 눈물로 호소했어도 누구도 듣지 않았다지요. 결국 어리석은 왕은 눈이 뽑힌 채 끌려가 죽었고, 수많은 귀족들과 백성들이 가축처럼 도살당하고, 화려한 성전이 파괴되고, 그리고 이스라엘은 멸망했습니다. 일단 종교가 타락하기 시작하면 이처럼 한 나라도 졸지에 망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침묵만 할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먼저 각 교회의 제직들은 월례 제직회에서 무엇보다 우선 재정 장부를 매년 정기적으로 공개하도록 엄중히 요구하시기 바랍니다. 종교 업자들의 궁극적 목표는 돈입니다. 따라서 한국교회 부패의 비밀은 모두 이 교회 장부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앞으로 교회 장부가 평신도 혁명의 발화점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거룩한 교회마저 타락하고 혼탁해진 슬픈 시대를 사는 우리 신자들은 늘 깨어 있어야 하며 수시로 자신의 공동체와 직분자들에게 이렇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너의 정체가 무엇이냐?"
"예레미야야, 내 백성을 시험해 보아라. 금속을 시험하듯 시험해서 도대체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밝혀 보아라(렘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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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남 /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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